지난달 28일 충북 충주 케이피에프(KPF) 공장에는 성인 팔뚝 길이보다 더 긴 볼트가 쌓여 있었다.
김재원 케이피에프 경영획부문장이 볼트 하나를 들어보였다. “높은 건물도, 큰 교량도 모두 이 볼트와 너트 한 쌍이
연결해줍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볼트와 너트의 연결이 단단하지 않으면 건축물이 붕괴할 수도 있죠.”
케이피에프는 건설·석유화학 플랜트·중장비·풍력용으로 쓰이는 대형 볼트와 너트를 생산하는 회사다. 작게는
2.5cm부터 긴 것은 4m짜리까지 만든다. 1963년 서울 동대문에서 ‘한국볼트공업’으로 출발했다. 6·25전쟁 직후
버려진 쇠붙이를 녹여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케이피에프의 볼트·너트는 우리나라
현대사 속 여러 기념비적인 건물에 사용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남 여수
세계박람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한강 교량 대부분에도 케이피에프가 만든 볼트·너트가 사용됐다. 케이피에프
제품은 고온과 고압, 염분, 강풍, 습기 등에 강해 당진 화력발전소,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같은 발전 시설에도
사용됐다. 국내뿐 아니다. 미국 애플 본사,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리지, 터키 차나칼레
현수교 등 전 세계 주요 건축물에도 쓰였다.
케이피에프의 제품이 60여 년간 세계적인 건축물에 쓰일 수 있었던 비결은 ‘안전성’이다. 볼트와 너트는 ‘체결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 철제 구조물을 정확히 조여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라도 잘못 조여지면, 붕괴 위험이 있어 하나하나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한다. 한범교 케이피에프 기획실장은 “사소해 보이는 볼트·너트가 각각 제 역할을 해줘야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같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케이피에프의 대표 제품인 ‘TC(Tension Control) 볼트’는 제대로 체결됐을 때 볼트 끝에 튀어나온 부분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정확한 강도로 조일 수 있게 해준다. 케이피에프는 수입에 의존하던 TC볼트를 1980년대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41국에 수출하고 있다. 김재원 부문장은 “아무리
비용을 절감한다 해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안전”이라며 “건설 현장에서는 비용이 더 들어도 믿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데, 케이피에프는 오랜 세월 신뢰를 쌓아왔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는 19일 금성출판사, 금용기계, 대양전기공업, 동미전기공업,
리노공업, 샘표식품, 성일에스아이엠, 씨티알, 천연식품, 케이피에프(가나다순) 등 10사를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했다. 명문장수기업은 100년 이상 가는 강소 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2017년부터 매년 선정해 오고 있다.
45년 이상 사업해온 중소·중견기업 중 고용·수출 등 경제 기여, 사회 공헌, 혁신 성과를 종합 평가해 선정한다.
충북 충주에 있는 케이피에프 충주 공장에서 김재원(오른쪽) 경영기획부문장과 김광양 파스너사업부문장이 건설용
대형 볼트를 손에 쥐고 있다. /신현종 기자
케이피에프는 볼트·너트 외에도 새로운 분야에 쉬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너트 생산 설비를 다르게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모양이 비슷한 자동차용 베어링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수출도 시작해 현재 전 세계
주요 베어링 완성품 제조 업체로 공급 중이다. 볼트·너트에 베어링까지 수출에 합세하면서, 케이피에프의 전체 매출
약 3300억원 중 64%는 수출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엔 로봇용 감속기 전문 기업을 인수했다. 김 본부장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자는 취지”라며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며 장수 기업의 경험을 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관련 링크 :
◎ 조선일보 [명문 장수 기업] [1] 대형 볼트 제작 '케이피에프'